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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항상 누군가의 엄마이자 아내... 배우 김영선에게 영화는 자유다
[나는 조연배우다-14] 삶에서 슬픔을 대하는 방식엔 크게 두 가지가 있을 것이다. 먼저 슬픔의 감정에 무방비로 스스로를 내맡기는 것.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자신의 목울대로 차오르는 울음을 저항 없이 토해낸다. 눈자위로 고여든 슬픔이 하나의 덩이를 이루어 그 무게를 가누지 못하게 됐을 때, 그냥 아래로 흐르도록 내버려둔다. 그렇게 온몸으로 운다.


/사진=한주형기자
▲ /사진=한주형기자

두 번째는 정반대다. 안간힘으로 저항한다. 이루 헤아리기 힘든 감정의 파고가 휘몰아쳐도 그 사태를 완강히 버틴다. 그러면서 속으로 우는 것이다. 말하자면 흐르는 눈물과 참는 눈물의 차이, 밖(外)으로 울고 안(內)으로 우는 것의 차이. 안팎의 차이만 있을 뿐, 둘 다 울고 있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배우가 슬픔을 표현하는 방식도 그럴 것이다. 어떤 배우는 있는 힘껏 바깥으로 울부짖을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한량없는 슬픔을 존재의 외곽으로 폭발시킬 것이다. 반대로 어떤 배우는 온몸으로 견디며 그 사태에 맹렬히 저항할 것이다. 그렇게 더없는 슬픔의 상태를 존재의 내부에서 터뜨릴 것이다. 속으로 울고 있단 사실은 최대한 감춘 채.


영화
▲ 영화 '천사의 숨소리'에서 배우 김영선은 절절한 모성애 연기를 선보이며 뭇 사람 가슴을 적셨다. /사진제공=필름코스터

그리고 여기, 김영선(47)이라는 배우가 있다. 그는 슬픔의 덩이를 분출함에 있어 양자 모두를 가로지른다. 그는 밖으로도 울고, 속으로도 운다. 한마디로 온 존재로 운다. 그렇게 흐르는 그의 눈물방울엔 신파라는 상투성 너머 무언가가 분명히 있다.

"괜찮아…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아들… 사랑해…."

영화 '천사의 숨소리'(2012)에서 죽어가는 천식 환자 영란(김영선)은 연기 지망생 아들 재민(한지원)에게 쉰 목소리로 말한다. 미안할 게 없음에도 거듭해서 미안하다 말한다. 정작 미안한 건 철없는 아들임에도 미안하다고, 또 미안하다고 말한다. 피골이 상접한 몰골로 새하얀 안면 가득 식은땀이 범벅인 채로, 그렇게 죽어서까지 미안해한다. 무어 그리 미안한 것인가. 더 오래 더 많이 사랑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이다.

이런 지적이 나올 수 있다. 이 모두 과도한 모성의 신화에 기대는 것 아니냐고. 흔하디흔한 예의 그 신파적 장면 중 하나가 아니겠느냐고.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 장면에 이른 당신의 목이 별안간 메이지 않기란 도무지 힘든 일이다. 생의 종착역에서까지 천사의 숨소리로 전하는 어머니의 저 간절한 사랑의 고백은 그러므로, 가슴을 후려치는 절절함이 분명히 있다.

김영선이 출연한 장면들이 대체로 그랬다. 영화와 드라마를 막론하고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보여준 연기의 대부분이 그러했다. 영화 '추격자'(2007)를 비롯해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2011), '미나문방구'(2013), '만신'(2013), '하프'(2015), '염력'(2017), 그리고 드라마 '응답하라 1994'(2013), '신의 퀴즈4'(2014) 등에서 선보여온 그의 모습은 자주 부족한 누군가의 어머니이거나 아내였다. 여기에 주연과 조연, 조연과 단역의 경계란 무의미한 것이다.

주목할 건, 이 모든 게 엇비슷한 자기복제에 안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천천히, 그러나 더 멀리 계속 나아갔다. 거기서 거기인 듯한 배역들을 할당받아도 그는 언제나 멈추려 들지 않았다. 자기 고유의 감정에 저만의 '색'과 '농도'와 '온도'를 곧잘 버무려 변주했다. 눈물 연기에 있어선 특히나 그랬다. 오늘의 눈물이 내일의 눈물과 다른 '맛'일 수 있음을, 오늘의 슬픔이 내일의 슬픔과 다른 슬픔일 수 있음을 그는 오롯이 체현해냈다. 언제부터인가 세상이 그를 '국민 엄마' '눈물의 여왕'이라 부르게 된 것도 하등 이상한 일이 아니다.


/사진=한주형기자
▲ /사진=한주형기자

그는 한국의 여배우로서, 이십여 년 넘게 저만의 아름다운 영화적 공화국을 지켜내왔다. 그리고 꾸준히 확장시켰다. 물론 스타는 아닐지언정, 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는 것은 아닐지언정, 어둑한 연못가의 반딧불이처럼 희미한 미광으로서나마 자신의 온 존재를 불 밝혀왔다. 이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과연, 어떠한 생애가 이 모든 걸 가능케 했을까. 인간 김영선의 과거가, 그의 생의 발자취가 하나의 단서가 되어주진 않을까. 궁금해졌다. 최근 그를 만나 처음 건네었던 건, 그리하여 이같은 물음이었다.

-한국에서 여배우로 산다는 것, 그것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배우 중 한 분이 아니실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시작부터 난감한 질문이지만, 실제로 어떻다고 보시나요.

▷아, 어렵네요(웃음). 꼭 여배우라서 그런 건 아니라고 봐요. 여배우든 남자배우든 저마다 어려운 부분이 있지 않겠어요? 더욱이 인지도가 없는 배우라면 성별을 떠나 각자의 어려운 면면들이 있을 테죠. 주변의 동료들이 투잡, 스리잡 뛰는 것을 굉장히 많이 보고 있기에…. 아, 이런 건 있을 수 있겠네요. 여배우가 할 수 있는 캐릭터가 많지 않아요. 극중 비중도 여전히 남자배우 100명이 나오면 여자배우는 3명 정도밖에 나오지 못하는 실정인 것 같아요. 감독님들도 대부분 남자 분이시죠. 그래서 남자 이야기는 쉽게 푸는데, 여자 고유의 이야기는, 특히나 그 감성은 잘 표현되지 못하고 있지 않나 싶어요.

-많이 지적되고 있는 부분이에요. 제가 느끼기에도 주류 영화계에선 여감독, 여배우의 입지가 매우 좁다는 아쉬움을 자주 느껴요. 적어도 독립영화계에선 보이지 않는 곳곳에서 실력 있는 여성 감독, 여배우들이 왕성히 활동 중이시잖아요.

▷그렇죠, 그래서 제 바람은 여자 감독도 주류 영화계에서 더 넓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그래야 좋은 여배우들도 더 많이 발굴되지 않을까요. 또 시나리오 작가들 또한 여자분들이 더 많아져야 우리가 보다 다양한 색깔의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런 점에서 배우님이 서 계신 자리는 후배 배우들에게 귀감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요. 비록 스타가 아니시고, 몇몇 독립영화를 제외하곤 주연을 맡으시는 것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이 나라 40대 중후반 여배우로서 왕성히 활동하고 계시니까요.

▷음, 그렇다고 저 역시 어려움이 없는 건 아니에요. 다 되었는 줄 알았는데 막판에 엎어지는 경우가 많거든요. 최근에 저한테도 그런 일이 있었어요. 몇 편이 잇달아 엎어진 거죠. 기분이 안 좋았죠. 촬영에 들어가기 전까지 그 인물에 집중하고자 살도 빼고 치열하게 관리를 했거든요. 속상해요. 잠깐이지만 그 인물에 사로잡혀 있거든요. 제가 취미나 특기가 딱히 없고 혼자 공상하는 걸 좋아해요. 배역이 주어지면 거의 온종일 그에 대해 공상해요. 그게 저만의 놀이예요. 이 인물은 이렇게 지내겠지, 말투는 이렇겠지, 사람은 저런 식으로 만나겠지. 그러다 작품이 엎어지면 너무나 허무해져요. 마치 모래성이 무너지는 느낌이랄까.


/사진=한주형기자
▲ /사진=한주형기자

'모래성이 무너지는 느낌'이라는 표현을 속으로 되뇌며 마음이 다소 무거워졌다. 떠오르는 배우가 몇 사람 있었다. 작품 네 개가 연이어 엎어진 일을 스스럼없이 고백해준 안미나. 4년간 단칸방에 지내며 야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해왔다는 그의 일대기가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쳤다. 아르바이트와 쿠킹 클래스 일을 겸하며 전업 배우의 길을 지금도 꿈꾼다는 강진아의 얼굴 또한 잠시간 오버랩됐다. 아아, 한국에서 여배우로 산다는 건 이토록 힘겨운 일이다.

-배우님은 '국민 엄마'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큼 스크린에서나 브라운관에서나 어머니 연기를 다양한 빛깔로 보여주고 계세요. 부성애 코드가 대세인 요즘 영화판에서 모성 연기를 배우님처럼 오랜 기간 해오신 분은 드물지 않나 싶어요.

▷너무 감사한 수식어죠. 굉장한 영광이고요. 그리고 저의 삶 자체가 제가 표현하기에도 '편한 엄마' '편한 아내'이다 보니, 대중이 보시기에도 편안한 연기가 나오는 것 같아요. 다만, 저는 배우잖아요. 늘 모범적인 역할만 하다 보니 요즘은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역할이랄까요. 광녀나 독특한 세계관을 지닌 여자, 이중 자아를 가진 그런 여자 같은 까다로운 캐릭터에 대해 요새 더 메리트를 느껴요. 그래서 그런 역할로 제안이 오면 보다 덜 고민하고 도전하게 돼요. 한편으로 제가 아니더라도 엄마 역할을 잘 해낼 친구가 누가 있을지 떠올려보곤 하죠. 그러다 저보다 낫겠다 싶은 친구가 있으면 주변에 추천해줘요.


영화
▲ 영화 '하프'에서 배우 김영선은 트렌스젠더 아들을 둔 어머니를 열연했다. /사진제공=인디플러그

-이를테면요?

▷독립영화계엔 주연으로 활동하는 여자 후배들이 참 많아요. 그래서 감독님들이 미처 알지 못한 여배우를 되도록 많이 추천해 드리려 해요. 예컨대 광고 일을 했던 이세랑이라는 배우가 있어요. 제가 예전에 '하프'라는 영화를 찍을 때 트렌스젠더 엄마로 출연했는데요. 굉장히 거친 듯하면서도 섬세한 느낌의 영화였는데, 거기서 이세랑 배우가 잠시 출연해요. 극중에 트렌스젠더가 범죄를 저질러 교도소로 가는데, 여자 교도소에 수감되기도 뭣하고, 남자 교도소에 수감되기도 뭣한 그런 딜레마가 펼쳐져요. 거기서 이세랑 배우가 여자 교도소에 수감된 매우 거친 죄수로 나와요. '어머, 너무 좋다'는 생각이 번뜩 들 정도로. 그래서 다른 작품에 추천해드리고는 혼자 행복해했던 기억이 지금도 나요. 부드럽고 예쁘장한 얼굴인데도 배역을 위해 살도 엄청 찌우고 거칠게 잘해냈거든요. 마치 '몬스터'(2003)에 나오는 샬리즈 시어런처럼.

-바깥에선 사람들이 배우님을 얼마나 알아봐요?

▷민망할 정도로 많이요(웃음). 다만, 반응이 대체로 이래요.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그래서 민망한 거예요. 차라리 어디서 봤다, 어디 나오지 않았냐 하시면 그렇다 하면 되는데, 그게 아니니 저를 제가 설명해드려요. '이거 보셨어요?' 하면 '아, 맞다 맞아' 하세요. 그런데 재밌는 건, 어머니 연기를 많이 하다 보니 화장했을 때보다 민낯일 때 더 알아보신다는 거예요.

-배우님의 연기를 복기하노라면 왜인지 굉장히 따뜻한 성정을 지닌 분이실 것 같다라는 느낌이 받아요. 특히나 배우님은 눈물 연기를 많이 해오셨는데,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 눈물 연기를 좋아하진 않거든요. 그럼에도 이상하리만치 배우님의 눈물은 보는 이를 전염시키는 무언가가 있어요. 저는 그 무언가가 진정성이 아닐까라는 짐작을 해요.

▷그렇게 봐주신다면, 제가 나름대로 진실된 삶을 살고 있구나, 그러려고 노력은 하고 있구나 싶어요. 앞으로 더 그런 삶을 살아야겠다는 포부도 생기고요. 저는 그래요. 저 김영선이라는 사람은 정이 참 많아요. 그런 게 인물에 투영되는 게 아닐까요? 그리고 눈물 연기는, 제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거예요. 그동안 안약을 써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절대로 계산하지 않고 진짜를 표현하려고 해요. 눈물을 흘려서 표현하는 슬픔이든, 눈물을 보이지 않고 삭여 표현하는 슬픔이든, 가짜는 예민한 분들한테는 반드시 들통난다고 보거든요. 그런 두려움 때문에라도 제가 표현하는 슬픔이 최대한 날것 그대로이도록 하죠.


/사진=한주형기자
▲ /사진=한주형기자

-그런 진정성 있는 눈물을 표현하는 데 모종의 계기가 돼준 일 같은 게 있을까요.

▷어릴 때 굉장히 슬픔에 잠긴 적이 있어요. 이러다가 기절하겠다 싶을 정도로 펑펑 운 적요. 집안이 불우해서 가족이 흩어져 지냈던 시절이 있어요. 그때 외가에서 자랐는데요. 외할아버지가 엄하셨어요. 매를 자주 드셨죠. 그럴 때면 유일한 저의 방패막이가 외할머니셨어요. 그런 분이 치매로 오랜 기간 고생하시다 돌아가셨을 때 그 차오르는 슬픔을 감당할 수가 없겠더라고요. 당시 죽음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대면한 거였어요. 그 공포감과 떠난 외할머니의 그리운 손길, 그때 느낀 그 감정을 지금도 그대로 간직하고 있죠.

-그때그때 느낀 감정이 소중하신 거군요.

▷이게 좀 직업병인데요. 제가 살면서 매 순간 느끼는 감정을 최대한 잊지 않으려 노력해요. 마음의 서랍에 이 감정을 고스란히 저장해 둬야겠다는 생각을 하죠. 그러면서 최대한 솔직한 상태로 끄집어내려 하고요. 특히나 슬픈 감정의 경우에는 저는 그 맛이 매번 다르다고 보기에 굉장히 신중히 표현하려 해요.

-슬픔도 맛이 다른 거군요.

▷혹시 눈물 먹어보셨어요?

-아뇨, 일부로 먹어본 적은 없죠.

▷저는 많이 먹어봤어요. 그때마다 맛이 달라요. 어쩔 땐 평소보다 더 짤 때가 있고요. 어쩔 땐 싱거울 때가 있어요. 슬픔도 맛이 다른 거죠. 우리 감정을 기쁨, 슬픔, 즐거움, 괴로움 등등이라고 할 때, 그 개개의 것들이 신기하게도 농도가 제각각이에요. 하나의 감정도 이처럼 세분화가 되거든요.

그는 1971년 부산 해운대구 수영동에서 나고 자랐다. 가장인 아버지는 버스운전사를, 어머니는 작은 미용실을 운영했다. 유복하진 않았지만 어머니 영향으로 지적이고 교양적인 풍토에서 컸다. "늘 책과 음악과 함께하셨어요. 학교 수업 끝나고 돌아오면 항상 전축에 비틀스 같은 올드 팝을 틀어놓으시고 독서 중이셨거든요. 주말이면 꼭 영화를 챙겨보셨고요."

그렇게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의 권유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등을 읽었고, '길'(1954)처럼 고전영화도 틈틈이 감상했다. 개중 '길'은 지금도 그의 인생 영화 중 하나로 꼽힌다. 이탈리아 거장 페데리코 펠리니의 네 번째 영화이자 펠리니에게 세계적 명성을 안겨준 '길'은 나이든 광대(앤서니 퀸)와 어린 소녀 젤소미나(줄리에타 마시나)의 정신적 사랑을 그린다. 김영선은 '길'이야말로 "그 시절 나의 감수성의 토양"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방 안에만 틀어박혀 지낸 수줍은 소녀는 아니었다. 사람들 앞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걸 좋아했다. 활달했기에 친구가 많았고, 주도적으로 방과 후에 연극 연습을 했다. "하루 한 시간만 할 수 있게 해달라며 선생님에게 조르고 또 조른 것"이었다.

부산진여중에 들어가서는 연극에 아예 빠져 지냈다. 친구 따라 뮤지컬 '신데렐라'를 보고부터였다. 신데렐라가 입은 드레스가 너무 예뻐 "나도 꼭 한 번 입어보고 싶었다". 이에 청소년극단에 들어갔고, 직접 시나리오까지 쓰며 연출도 해봤다. 그저 자연스럽게 놀이하듯 즐겼다는 그다. "아기들이 인형으로 역할놀이 같은 걸 하잖아요. 공주 인형을 갖고 있으면 공주 연기를 하듯이요. 저도 그렇게 놀았어요."

하지만 그때까지였다. 본격적인 학업이 요구되는 고교 때부터 부모님 제지가 시작됐다. 그러다 1학년 무렵, 온 가족이 삶의 터전을 서울로 옮기면서 은평구 선일여고로 전학을 간다. 연극과의 이별이었다.

-듣고보니 말 잘듣는, 똑 부러지는 학생이셨나봐요.

▷돌아보면 참 독특했어요. 공부 안 할 땐 반에서 성적이 바닥을 기었어요. 60명 중 45등할 때도 있었죠. 그럴 땐 아예 교과서를 안 본 거예요. 그러다 시험 준비를 하면 성적이 곧잘 나와요. 전교 3등을 한 적도 있거든요. 아이큐가 130은 되었으니 머리가 나쁘진 않았죠.

-스스로 좋아서 해온 것들이 일거에 물거품이 되면서 섭섭함도 많았겠어요.

▷그 시절엔 잘 몰랐어요. 우리 집이 가난하다는 걸요. 어머니도 내색 안 하셨어요. '엄마, 나 드레스 입고 싶어' 이러면 사주진 못하더라도, 손수 만들어주시곤 했거든요. 하지만 '나 연기학원 다니고 싶어'라고 하면 극렬히 말리셨어요. '네가 하면 세상 누구나 한다'면서. 고집부리진 않았어요. 자존감이 낮았거든요. 부모님 말에 그대로 설득됐어요. 저희 집안이 네 자매인데, 저는 차녀예요. 언니는 언니대로 집안의 기둥이 되어야 하니까 대학을 가야 했고, 저는 빨리 돈을 벌어야 했어요.

-부모님이 바라신 직업이 있었나 보죠?

▷은행원요. 그 시절 여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장이 은행원이었요. 그래서 선일여고를 졸업하고 남대문에 있는 제일은행에 들어갔어요. 거기서 3년간 은행원을 했어요. 근데 일이 저랑 안 맞더라고요. 그땐 전자시스템이 아니니 꼼꼼해야 하는데 그렇지도 못하고요. 남대문 지점인지라 시장 사람이 굉장히 많이 와요. 늘 창구 앞에 줄을 쫙 서는데 일일이 번호표를 주고 기다리시죠. 제가 손이 더뎌 자주 욕먹었어요. 계산이 빠르지도 않거든요. 혹여나 액수 착오라도 있으면 밤새 퇴근을 못했어요. 다시 맞추느라고요.

-3년 만에 그만둔 건 그래서인가요?

▷결혼을 1992년에 했어요. 저를 위해 다닌다기보다 부모님을 위해 다닌다는 생각이 컸는데, 그러다 첫사랑을 만난 거죠. 지금 제 남편요. 첫눈에 반했어요. 혹, 그런 경험 있지 않나요? 한 사람만 선명하게 보이고 주변은 희끗한 거. 주변 사람은 수채화에 물 뿌려둔 것처럼 희뿌연데 그 사람만 빛이 반짝반짝 후광이 나는 거.

-운명의 남자였네요. 누가 먼저 다가왔어요?

▷저죠(웃음). 6개월간 많이 쫓아다녔죠. 당시 남편이 보험회사 직원이었어요. 그래서 매일 왔죠. 이 사람을 제 쪽에 줄 세우고 싶었어요.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직한 사람이라 늘 업무 보던 사람 창구에만 가더라고요. 제 옆에 있는 언니 쪽으로요. 그래서 한 번은 언니가 화장실 간 사이 남편이 왔는데, 저를 쓱 보길래 이렇게 말했죠. '고객님, 좀 늦으실 거 같은데 저한테 맡겨놓고 가세요.' 그렇게 제게 맡긴 통장을 쉬는 시간 손수 정리해줬어요. 그러니 남편이 고맙다고, 밥 한 번 사겠다고 하더라고요. 점잖은 사람이라 그냥 의례적으로 한 말일 텐데 저는 그걸 데이트 신청으로 알았어요.

-영화의 한 장면 같은데요?

▷연애를 그간 못 해봤으니 뭘 알겠어요. 경험이 있었으면 '밀당'이라는 걸 알았을 텐데, 그런 걸 해본 적 없으니, 마냥 좋아 그 좋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했던 것 같아요. 실수도 많이 했죠. 거짓말 하면 다 들통나거든요. 그래도 좋은 것만 보여주고 싶으니 어쩔 수 없죠. 이 사람이 좋다는 것만 얘기하고 싶고, 취미가 안 맞아도 같은 취미를 가진 듯 둘러대고 이야깃거리를 계속 만들어내려 했고요.

그렇게 결혼에 골인했다. 그때 나이 스물하나. 이듬해인 1993년 아들을 낳았고 2년간 육아에만 전념했다. 소소한 행복의 나날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공허감 또한 없지 않았다. 오랜 기간 잊고 지낸 무언가가 마음 귀퉁이로 자꾸만 신호를 보내온 것이다. 연기에 대한 갈망, 나를 찾고 싶다는 열망이었다. '부모님 뜻대로 순순히 포기했던 그 길을 다시 한 번 걸을 수 없을까.' 더는 재능을 묵히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남편의 지지로 극단 '증언'에 들어갔고, 연극인으로서 길을 본격적으로 밟는다. "다시 삶을 사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학창 시절 취미로 했던 것이 드디어 삶이 된 것 같았어요. 꼭꼭 감추어둔 저를 바깥으로 표현하기 시작한 거죠." 그렇게 대학로에서 '빈방 있습니까'를 처음 올렸고, 이듬해엔 영화계에 데뷔한다. 강우석 감독의 '한반도'(2006)였다.


배우 김영선은 2006년 강우석 감독이 찍은
▲ 배우 김영선은 2006년 강우석 감독이 찍은 '한반도'의 후궁 역에 캐스팅되며 영화계로 입문했다. /사진제공=시네마 서비스

-'한반도'는 안성기, 문성근, 차인표, 강수연, 독고영재, 김상중 등 초호화 멀티 캐스팅 영화였어요. 첫 영화로 이만한 경험을 하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요.

▷이미지 단역이었어요. 대사 한 줄 없었죠. 오디션 없이 주변 소개를 받고 간 거였어요. 의욕에 불타 있었죠. 꿈꾸던 영화에 출연하게 된 거니까요. 게다가 강우석 감독님 작품이잖아요. 감사하게도 크랭크인을 처음 올리고 찍은 첫 신이 저의 출연분이었어요. 첫 신이다보니 감독님 열정도 대단하셨죠.

-이미지 단역이었어도 굉장히 값진 경험을 하신 셈이네요. 극 초반이었나요. 명성황후(강수연)를 죽이러온 일본 자객들에게 칼에 맞아 죽는 네 후궁 중 한가운데 인물이셨죠. 대사는 없지만 오버숄더숏으로 배우님 얼굴을 가까이서 쫙 비추죠. 면전에 일본도를 들이대는 자객을 노려보며 입을 파르르 떨면서.

▷매우 짧은 신인데도 감독님이 매우 세심하게 디렉팅해 주셨어요. '지금 심정은 무섭고, 두려운데 강한 적대감 또한 있어야 합니다'라고요. 스치듯 지나가는 배역임에도 다섯 가지 이상 감정을 소화해달라고 제게 주문을 하시더군요. 이런 식으로요. 바로 앞에서 '자, 지금 잘 보세요. 상황이 이래요. 저기 적군이 와요, 칼을 들고 있어요, 무섭고 두려워요, 근데 민비가 어디있는지 본인은 알아요, 그런데 알아도 모른 척해야 돼요'라고 하시는 거죠. 별별 요구가 많으셨는데, 전 그게 굉장히 좋고 흥분되더라고요. 네, 네 하면서 눈빛이 반짝반짝해지는 거예요. 정말 혼신을 다했어요. 바들바들 떨면서도 독기를 가득 품었죠. 그러다 '오케이'를 받았을 땐 기운이 쫙 빠져서 그만 쓰러졌어요. 그런데도 참, 너무나 행복한 거 있죠? 그때 이런 생각을 했어요. '아, 영화를 해야겠다.'

-영화로 이행하게 된 게 강 감독님 덕분이군요.

▷소중한 은인이세요. 처음으로 스스로 배우라는 느낌을 갖게 해주셨거든요. 영화가 연극보다 좋았어요. 짧은 시간 모든 걸 다 토해내고 쓰러질 수 있다는 것. 그 강렬함을 알게 된 거죠. 아, 영화라는 매체에선 나를 다 보여줄 수 있겠다 싶었으니까. 연극은 달랐어요. 서로 간에 합이라는 게 있어 철저한 계산하에 진행해야 하거든요. 눈치와 배려도 더 필요하고요. 연극도 열정을 다했지만, 짧은 시간 한 컷 한 컷 안에 승부를 봐야 하는 영화가 저한텐 더 잘 맞겠다는 확신이 그때 섰어요. 주연이든, 조연이든, 단역이든 제가 프레임 안에 들어온 순간만큼은 제가 주인공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요.

-이후 굉장히 왕성히 작업하셨어요. 호평받은 큰 영화에도 두루 나오셨고요. '추격자'에선 영민(하정우)의 누나로, '범죄와의 전쟁'에선 익현(최민식)의 아내로요. '내 연애의 기억'(2013)에선 푼수 같은 정마담이셨죠. 최근엔 '염력'(2018)에서 루미(심은경)의 엄마로 극 초반에 나오셨고요. 이 모습들을 모두 합치면 배우님의 실제 모습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요.

▷매년 서너 편씩 쉬지 않고 작업해왔어요. 돌이켜보면 참 그래요. 제가 연기한 어떤 배역이든 매 순간 제 모습이 아닌 게 없다고요. 악역을 하더라도 마찬가지예요. 영화가 참 좋은 게, 남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제가 일상에 꼭곡 감춰둔 허점들을 보여줄 수 있어요. 그게 저는 되게 재밌더라고요.


영화
▲ 영화 '해에게서 소년에게'에서 배우 김영선은 민희(김가현)의 어머니 진숙을 연기했다. /사진제공=디씨드

-필모그래피를 보면 상업영화 독립영화, 장편, 단편 가릴 것 없이 찍고 계세요. 소년의 비극을 그린 '해에게서 소년에게'는 2015년 전주국제영화제 배급지원상 등도 받았죠. 그해 세월호 추모 단편 '편지'에도 유가족 어머니로 나와 가슴 울리는 절절한 연기를 보여주셨고요. '폭력의 씨앗'(2017)에서 윤 권사로 특별출연도 하셨죠.

▷독립영화가 품고 있는 '다양성'의 가치를 좋아해요. 남들이 흔히 여기는 건 어떤 배우도 피하고 싶을 거예요. 그런 점에서 독립영화는 흔치 않은 캐릭터를 두루 만날 수 있죠. '해에게서 소년에게'에서 연기한 민희(김가현) 어머니는 언뜻 선해 보이지만 이면이 있는 다소 위선적인 여자였어요. 좋은 경험이었죠. 이 영화가 전주영화제에 공개됐을 때 레드카펫을 한 번 꼭 밟고 싶긴 했는데, 촬영 일정으로 못 그런 게 내심 아쉽긴 해요. '편지'는 그해 광화문에서 열린 세월호 추모제에서 상영됐어요. 너무 안타까운 일이잖아요. 배우로서 노란리본을 다는 것 외에 제가 표할 수 있는 어떤 진심 어린 애도가 뭐가 있을까 싶을 때 마침 아는 조감독님이 시나리오를 보여주며 도와달라고 하셨어요. 마다할 이유가 없었죠.

-이제 거의 다 왔네요. 혹시, 배우님의 길을 걸으려는 후배들, 연기 지망생들에게 조언을 해주실 수 있을지요?

▷음, 너무 학교 공부하듯 하진 말았으면 좋겠어요. 연기도 연기 이전에 각자의 삶이 있는 거예요. 그 삶의 결들을 저마다 풍성하게 하는 게 먼저겠죠. 그리고 '본능적인 감정을 놓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연기는 감정에 호흡을 더하고 그 위에 표현을 그 위에 약간의 기술을 얹는 게 순서거든요. 결국엔 그 감정을 각자가 어떻게 쌓아나가냐의 문제예요.

배우가 가장 기피하는 질문은 이런 것일 테다. '당신에게 영화란 무엇인가' 같은. 이것은 대단히 난감하고 또 경박한 질문일지 모른다. 연기를 업(業)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그 살아감의 바탕을 묻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에겐 평소 생각해둔 저만의 대답이 있으리란 예감이 왜인지 있었다. 김영선은 '올 게 왔구나'라는 표정이었다. 그러더니 미소 짓는 것이다.

"저한테 영화는 자유예요. 카메라 앞에 설 때 저는 가장 자유로워져요."

영화는 자유라는 것. 오랜 기간 스스로의 삶을 깊이 성찰하지 않고서야 불가능할 대답. 순간의 난처함을 면피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프레임 안에 들어가 있을 때 저는 자유가 돼요. 날개 달린 새처럼, 바닷속 물고기처럼. 영화는 그렇게 저를 해방시켜요. 적어도 카메라 앞에 설 때만큼은 세상의 그 어떤 규율과 규제에도, 타인의 시선에도 얽매이지 않게 돼요. 제가 영화를 사랑한다면 아마도 그래서일 거예요." 이런 마음자세를 지닌 배우가 한국에 있다는 건, 참으로 복받은 일일 것이다.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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